[단독] 11번가 강제매각 돌입…눈높이 대폭 낮추고 워터폴 방식

입력 2024-01-08 08:12   수정 2024-01-08 15:32

이 기사는 01월 08일 08:1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콜옵션(매수청구권) 포기로 논란을 빚었던 SK그룹 11번가가 재매각 작업에 돌입했다. 이번 매각은 투자자가 자금을 먼저 회수하는 워터폴(Waterfall) 방식으로 이뤄진다. 매각 주도권을 쥐게 된 투자자들은 눈높이를 대폭 낮춰 매각가로 투자 원금과 이자 수준에 그치는 6000억원 수준을 희망하고 있다. 이 경우 최대주주인 SK스퀘어가 얻게 될 수익은 0으로, 장부가상 수천억원의 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1번가가 지난주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삼정KPMG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해 본격적인 재매각 작업에 나섰다. 국내외 전략적투자자(SI) 몇 곳을 시작으로 매각 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주체는 최대주주(지분율 80.26%)인 SK스퀘어가 아닌 18.18%를 보유한 재무적투자자(FI)들이다.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H&Q코리아와 이니어스프라이빗에쿼티(PE) 컨소시엄이다.

SK스퀘어가 지난해 11월 말 FI 지분을 사갈 수 있는 권리(콜옵션) 행사를 최종 포기함에 따라 11번가는 FI 주도로 재매각 수순을 밟게 됐다. SK스퀘어는 2018년 이들로부터 5000억원을 유치하면서 2023년 9월까지 11번가 기업공개(IPO)를 통한 투자 회수를 약속했지만 IPO에 이어 매각까지 실패하면서 옵션이 발동된 상태였다. 콜옵션 포기로 FI들은 결국 드래그얼롱(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하게 됐다.

이번 재매각이 성사될 경우 국내에선 드래그얼롱을 통한 첫 매각 사례가 된다. 대주주의 콜옵션 포기, FI의 드래그얼롱 행사는 대주주가 경영권을 FI에 넘기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자본시장에선 최후의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번 재매각에선 눈높이를 크게 낮추기로 했다. 2018년 투자 당시 기업가치로 2조7500억원을 평가받았던 회사지만 매각 측은 매각가로 6000억원 수준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투자 원금 5000억원에 연간 3.5%의 보장수익을 합친 정도의 규모다. '욕심부리지 않고 들인 돈만큼만 건지고 떠나겠다'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매각가가 크게 낮아지면서 앞서 인수를 검토했던 아마존, 알리바바, 큐텐의 재참전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이들은 모두 협상장에 앉았다가 막판 자리를 이탈했다.

가장 인수에 가까웠던 곳은 싱가포르의 역직구 플랫폼 큐텐이었다. 큐텐은 당시 매각가 1조원과 함께 SK그룹 지급보증을 인수 조건으로 제시했다. 메리츠증권으로부터 5000억원을 투자받아 11번가 인수에 활용하려던 계획이었는데 메리츠 측에서 '출자를 받으려면 SK스퀘어로부터 지급보증을 받아오라'고 조건을 내건 것이다. 메리츠는 투자금이 큐텐 지분으로 전환되면 회수 확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 보고 SK그룹에 기대 안정성을 확보하려 했다. SK스퀘어는 조건 수용이 무리라 판단하고 협상을 결렬시켰다. 알리바바와 아마존의 경우엔 이사회에서 매각 결정이 통과됐으나 상대 측 최고의사결정 과정 단계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번 매각은 FI가 먼저 자금을 회수하는 워터폴 방식으로 이뤄진다. FI들은 2018년 투자 당시 드래그얼롱을 행사하게 될 경우 우선적으로 투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워터폴 조항을 약속받았다. 워터폴 매각에 따라 출자자(LP)였던 국민연금(4500억원)과 새마을금고(500억원)가 투자원금과 보장된 만큼 배부수익을 먼저 가져가고 위탁운용사(GP)인 H&Q코리아와 이니어스PE, 그리고 SK스퀘어가 차례대로 수익을 얻어가는 구조다.

매각가가 6000억원 수준으로 결정될 경우 LP와 GP들은 손실을 피하지만 추가 수익이 없으면 SK의 수익은 '0'이 될 것으로 보인다. LP와 FI들이 "이번 11번가 매각만큼은 추가 수익까지 기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보니 SK스퀘어의 손실은 사실상 확정적이게 됐다. SK스퀘어의 11번가 지분(80.26%) 장부가는 주식 취득 원가 그대로 1조494억원이다. 지분 100%를 기준으로 보면 기업가치는 1조3075억원이다. 매각가가 6000억원 선으로 결정될 경우 수천억원의 평가 손실을 반영해야 한다.

SK스퀘어가 지분을 모두 매각하지 않고 일부는 남겨놓을 가능성도 있다. SK그룹과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SK스퀘어가 지분 일부를 보유하길 바라는 원매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SK는 일부 투자 회수 기회를 추후에 도모해볼 수 있다.

e커머스에 대한 SK그룹의 의지가 이전같지 않다는 점은 변수다. 앞서 큐텐과의 매각 협상에서도 SK의 입장이 잘 드러났다. 구영배 큐텐 회장은 같이 손잡고 e커머스 시장을 다시 부흥시켜보자는 목적이 있었다. 대규모 공동투자 의사도 타진했다. 구 회장은 티몬, 인터파크커머스, 위메프 인수에 이어 11번가까지 품으면서 쿠팡·네이버와 대적할 수 있는 공룡 플랫폼을 만들기를 원했다. 반면 SK는 10~20% 지분을 남기고 공동경영하는 형태엔 찬성했지만 'e커머스를 크게 키워보자'는 제안엔 공감하지 않았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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